산이 흔들리고 바다 물이 뛰놀지라도
‘경주’하면 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여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수학여행은 출발 며칠 전부터 이미 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경주행 완행열차는 그야 말로 행복열차였다. 기차가 어두운 굴속이라도 지날 때면 환호성은 장난스런 괴성으로 바뀌기도 했다. 수학여행은 평소에는 어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선생님들을 골려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신라 고도(古都) 경주를 돌며, ‘첨성대’와 ‘안압지’ 등을 설명하시며 무엇 하나라도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지만, 학생들은 거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직도 큰 추억거리는 해질 저녁에도 친구들과 함께 변변한 놀이시설도 없었던 여행지를 자유를 만끽하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지금의 경주는 많이 바뀌었다. 대규모 관광단지가 들어서고 서울에서 KTX로 가면 거의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오가는 시간이 짧아진 만큼 기억에 쌓여 추억이 되게 하는 설렘도 줄어든 듯하다.
경주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우리나라 대표적인 관광지요 수학여행 1번지이다. 특히나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수학여행 학생들이 경주를 찾는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지난 9월 12일부터 시작된 지진 때문이다. 예기치 않게 경주에 닥친 지진은 전진(前震) 진도 5.1 본진(本震) 진도 5.8에 이르는 강진이었다. 우리나라 지진 관측사상 가장 강한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본진 이후 최근까지 450여 차례 여진(餘震)이 계속 땅을 흔들어 댔고, 그 흔들림에 첨성대도 기울어졌다. 지진은 땅을 흔들어 댄 것 뿐 만 아니라 경주지역 사람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의 마음도 뒤흔들었다. 천정의 전구가 흔들거리고, 선 반위 그릇들이 달그락 거릴 때마다 불안과 염려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했다. 어느 목사님은 예배 설교 중에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이 있었다고 했다. 그 때에 성도들은 비교적 태연한 척 앉아 있었지만, 표정과 몸짓에는 불안한 심리와 불편한 기분이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지진은 가까운 일본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었다. 남의 일로만 여기던 지진을 만나고, 전문가들은 ‘불의 고리’, ‘태평양판과 유럽판의 움직임과 활성단층’ 이런 복잡한 설명들을 했다. 설명은 사태에 대한 이해를 가져오기보다, 오히려 대자연 앞에선 인간의 무력함을 시인하는 듯 했다. 정치권은 늘 그랬듯이 지진 경보문자 발령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재난관련 유관기관들이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입바른 소리를 해댔다.
예상치 못한 지진으로 인해 한반도는 지진 대비책들에 대한 필요와 당위에 대한 목소리가 많다. 아파트나 빌딩마다 내진 설계에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지진에 대비하는 설계에는 지진으로 발생하는 진동에너지를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따라 크게 3가지 방식이 있다. 건물 전체가 진동에너지를 흡수하도록 설계하는 내진(耐震) 설계, 진동에너지를 흡수하도록 흡수 기둥이나 장치(뎀퍼, damper)를 건물 중간에 설치하는 제진(制震) 설계, 건물의 기초 부분에 진동에너지를 흡수하도록 설치하는 면진(免震) 설계 등의 기술이 있다. 이러한 내진설계로 건물과 구조물들을 안전계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재난 경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하고,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대피훈련으로 사람들이 지진에 대한 긴급요령을 체득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땅 아래서 마그마가 들끓는 강력한 화산활동을 누가 막아 낼 수 있고, 땅이 요동치고 바닷물이 산같이 뛰노는 것을 누가 멈출 수 있겠는가?
시편기자는 땅이 갈라지고 종이처럼 휘어지는 지진을 보았을까? 그는 하늘로 불을 내뿜는 화산활동을 보았을까? 잔잔하던 바다에 쓰나미가 산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까? 그는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로다”(시편 46:1-3)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여러 시련들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어찌 자연 재해 뿐이겠는가? 불확실한 미래로, 뜻하지 않은 사고로, 피할 수 없는 질병으로 때로는 전쟁의 소문으로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급습한다. 수술실 문 안으로 산소 호흡기를 꽂은 환자를 다급하고 보내고, 남은 가족들은 멍하니 닫힌 문만 바라보며 서성댄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한없이 내려져 있다.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골리앗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울의 군대처럼 말이다. 엘라 골짜기에서 사울의 군대는 장대한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골짜기를 지배하시는 분은 다윗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오직 한 분이신 주인이시다. 그 분은 우주와 그 안에 이 땅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요, 지금도 인생과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고, 내 영혼의 주인이시다. 그 분만이 우리 삶과 영혼이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케 하신다. ‘하나님은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로다!’
평신도신문 시론 (201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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