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목계양도(木鷄養到)
2017-02-15 19:10:09
담임목사
조회수   328

목계양도(木鷄養到)

      

이제 설날도 지나고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 성큼 오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시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어디선가 한 겨울 찬바람이 불어온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탄핵정국 그리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급변하는 주변 강대국들의 움직임들은 2017년을 시작하는 우리를 희망으로 들뜨게 하기 보다는 염려로 침잠하게 만들고 있다.

 

2017년은 정유년 닭의 해다. 조선시대에 양계를 국가 정책으로 장려한 이래, 닭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가축 중에 하나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을 닭의 가치절하 보다는 닭의 익숙함으로 읽고 싶다. 시계가 진귀한 보물처럼 여겨지던 시절에 닭은 여명을 밝히는 울음소리로 새로운 한 날을 깨워 시작하게 했다. 굳이 닭의 해가 아니더라도 닭만큼 새해에 어울리는 가축은 없다고 여겨진다.

 

닭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투계(鬪鷄)는 꽤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투계는 3 천여 년 전 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마을별 대항을 통해 단합과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고구려의 무용총에 그려진 벽화에 투계의 장면이 있다고 한다. 투계하면 흔히 맹렬하게 상대를 향해 달려드는 닭을 떠올린다. 그래서 언설로 논쟁할 때 이와 비슷한 사람을 싸움닭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장자의 달생편(達生篇) 실린 이야기는 최고의 싸움닭이 어떤지를 전혀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

 

중국 주()나라의 선왕(宣王)은 닭싸움을 매우 좋아했다. 선왕은 당대 최고의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紀省子) 불러 자신을 위해 자신의 닭을 최고의 싸움닭으로 훈련시키라고 명령하였다. 맡긴 지 10일이 지난 후 선왕은 기성자를 불러 이제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물었다.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적수를 업신여기고 깔보는 자만심을 품고 헛기운으로 적수를 대하고 있습니다.” 10일이 지나 선왕이 물으니,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적수의 소리를 듣고 그림자만 보아도 곧장 달려들려고 합니다.” 다시 10일이 지났지만, 기성자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을 버렸으나 상대방을 보면 공격적으로 눈을 흘기고 노려봅니다.” 또 다시 10일이 지난 후에야 기성자는 왕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이제 되었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나무로 만들 닭(목계, 木鷄)과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하여 다른 닭들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장자가 전해준 이 고사에서 최고의 투계는 목계와 같은 닭이다. 사방의 적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으로 고고히 서 있는 닭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뒤를 쫓는 애굽의 병거와 앞을 막은 홍해 사이에 놓였다. 진퇴양란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앞뒤로 우겨 싸임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분노와 원망으로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 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털썩 주저앉아 죽음의 장송곡을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모세는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두려워하지도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4:13) 뒤를 좇는 애굽의 병거와 앞을 막은 홍해 앞에서 모세는 의연하게도 백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란다. 모세의 의연함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올해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이다. 나는 그냥 닭의 해가 아니라 목계의 해로 삼고 싶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혼란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 경제는 뒷걸음질 치고 외교 안보는 표류하는 가운데 내부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교회도 어려운 일들의 산재로 그닥 시원하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오히려 일희일비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묵묵히 나가는 행보가 필요할 때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의 백성에게 구원을 행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 오직 주 만이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62:1-2)


평신도신문 칼럼(201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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