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독일 마을에서 만나는 가족 사랑>
<출처 - 남해문화관광 사이트>
푸른 바다 다도해로 유명한 남해에 가면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색적인 마을 하나가 있습니다. 저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남해군 산동면에 위치한 독일 마을입니다. 멀리서 보면 빨갛고 높은 지붕에 단순하면서도 깨끗한 주택들이 숲 속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이 파란 하늘 아래 아름답습니다. 잘 조성된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주민들이 사는 집들은 가까이 하기 어렵지만, 광장과 독일의 풍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상점과 카페들이 방문객들의 맞아 줍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웠던 1960 ~ 70년대에 남자들은 광부로 여자들은 간호사로 생면부지 독일 땅으로 보내져 피땀 흘려 일하며 한 평생을 보냈던 분들입니다. 남해 독일마을은 이분들이 은퇴하고 고국 대한민국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기 위해 20년 전부터 조성된 마을입니다.
보릿고개 밑에서 / 아이가 울고 있다 /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서 /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 한 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 굶으며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 지금 내 앞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황금찬 보릿고개)
우리나라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열악한 국가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외화가 필요했고, 해외로 인력을 송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노동력 부족사태를 겪게 되었고,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일 할 곳이 없는 상황이라 1963년 처음으로 독일로 보낼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자그마치 4만6천명이 지원할 정도였지요. 대부분은 20대와 30대 중반이었습니다. 3년 계약의 광부들에게는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높은 수입을 보장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는 지하 1천 미터 막장에서 엄청난 지열과 싸우며 힘겨운 일을 해냈습니다. 파독 간호사들의 월급은 광부보다는 조금 많은 최고 800마르크였다고 합니다. 간호사들도 광부들처럼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처음에는 시채를 닦거나 힘든 간병인의 일을 했습니다. 이분들이 힘겹게 일해서 받은 월급의 대부분은 그대로 우리나라로 송금되어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국가적으로는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30대 중반에 남편을 여의고 3년째 혼자 남매를 키우던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한 독일 행이었습니다. 한국에 두고 온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악착같이 벌었지요. 돈 드는 바깥출입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월급 800마르크(당시 우리 돈으로 5만 4,000원) 가운데 600마르크를 꼬박꼬박 한국의 친정어머니에게 송금했습니다. 그 당시 쌀 한 가마니에 3,000원, 초급 공무원의 한 달 월급이 3,300원. 70년대 후반까지 파견된 총인원은 광부 8천4백 명, 간호사 1만 3백여 명 등 총 2만 가량 됩니다. 남해 독일마을 광장에 있는 파독역사전시관에서 빛바랜 사진 몇 장을 보면서 우리 나라와 가정의 오늘이 있기 까지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에머슨(1803-1882, 미국의 시인 사상가)는 이 세상에 농부나 목수나 화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 목수의 일을 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같음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다른 예리한 구분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그가 어떤 존재이냐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머나먼 독일로 일하러 갔던 분들은 광부나 간호사가 아닙니다. 광부나 간호사라는 직업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하 1000미터 막장에서 기둥을 세우고 석탄을 파내고, 흰 가운을 입었지만 힘겨움과 외로움과 싸웠던 나라를 생각하고 가족을 사랑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생계 수단을 삼든지 우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나라의 소중함과 가족의 사랑을 아는 존재들입니다. 날씨는 선선해지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의 삶과 믿음생활 그리고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위드코로나 (With Corona)시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자리가 어디든지 우리를 나라를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복음의 푸른 산 기슭에 각자 믿음의 집을 잘 짓고 저 멀리 보이는 소망의 바다를 바라봐야겠습니다.
- 우물가 위임목사 메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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